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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모른다

`,.' 2015. 8. 12.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나와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비관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객관적인 현실, 사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외모, 성적이 아무리 뒤처져도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외모, 성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을 경멸하고 비관할 수 있다.


자신을 고치고 싶다면 이런 진리를 몇년 이상 매일 빠지지 않고 나 자신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그냥 저 문장을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내 감정이, 무의식이 이해해서 저 문장을 보았을 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사람이 변하기 힘든 이유는 머리로 깨닫는 것과 감정으로 깨닫는 것이 다르며, 감정으로 깨닫는 것이 1,000배는 어렵기 때문이다.그러나 우선 시작은 머리로 깨닫는 거니까, 이런 사실을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인간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에 행복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수정하자, 내가 저 사람보다 뛰어나면 행복해질 수 있고, 관심받으면 사랑받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사랑과 관심을 욕망한다.

그것들이 좌절될 때 질투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 생각들의 전부 행복의 반대말들이다. 욕망이나 질투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공포와 행복은 반대말이다. 욕망, 질투는 내가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려나 공포와 함께한다


사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있다 이타적인 사람은 행복하다. 이타적인 사람이 가장 이기적이라는 말이 맞다. 이타적인 사람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말하는 이기적이라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기적인것이 아니다. 타인도 자신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는 욕망은 쾌락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이것을 달성했을 때 기분이 좋은 것은 목표달성에 대한 보상으로 뇌에서 준비되는 화학물질 때문일 뿐이다. 화학물질로 인한 감정의 기분 좋음을 최대한 경계하라.


술도, 성욕도, 어떤 욕망의 달성으로 인한 기쁨, 공상도 포기해야 한다. 쾌락의 포기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어떤 책에서 공포에 대한 보상으로 화학물질을 낼 때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공포와 행복은 절대 동시에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즉 공포를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쾌락까지 전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조건으로 행복한 게 아니라 매 순간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은 아무리 외부의 시련이 온다 하더라도 잠시 슬픔을 음미하고 긍정으로 나갈 수 있다. 쾌락은 일시적으로만 기분 좋은 것이다. 일시적인 기분 좋음을 포기해야 늘 기분 좋음을 얻는다. 쾌락의 포기는 많이 어렵다. 누가 기분 좋은 달콤함을 포기하고 싶겠는가. 특히 이미 쾌락이 삶의 원동력에 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것에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술, 성욕, 도박, 오락, 공상, 타인을 비난하는 것, 성취 욕구 등등에서 쾌락을 느낄 때 자신을 비난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쾌락을 느끼고 이렇게 쾌락을 느끼는 것을 계속 즐기면 행복할 수는 없겠구나.'라고 자신을 이해시켜라. 죄책감도 타인을 비난하는 것처럼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비난의 한 종류이고 죄책이 미덕이 될 수는 절대 없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자신을 습관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세상을 똑같이 습관적으로 비난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비난 그 자체이다. 비난을 많이 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은 어떤 대상을 불문하고 비난한다. 비난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깎아내리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객관적으로 보되 가능성까지 보는 것이다. 비난하는 태도는 객관적으로 보면서 가능성은 보지 않고, 부정성을 보는 것이다.


자신은 객관적이라고 하면서 비난을 일삼는 사람과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비난은 어떤 대상을 볼 때 사랑도 감사도 없는 태도이다. 나의 비난습관이 시작된 이유는 타인보다 내가 나아지려는 욕망에서였다. 내가 최고가 되고 싶으니까. 또 내가 무시당하는 게 두려우니까. 그리고 늘 내 아버지가 취했던 태도니까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 배웠다. 그러나 비난 자체가 사랑도 감사도 없는 행복과 반대되는 습관이라는 것을 감정과 무의식까지 완벽히 깨닫는다면 비난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선택하고 이 세상을 황소처럼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감정으로.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C%95%84%EB%A1%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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