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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게임 추억

`,.' 2015. 8. 27.



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어쩌면 게임에 대해서만큼은 축복받은 세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이 홀딱 망하기 전, 우리 집은 가정용 오락기를 가진 몇 안 되는 집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 내가 한창 자랄 나이 때 우리 세대를 강타했던 바람의 나라와 같은 머드게임이


한창 주가를 올리며 게임시장에 시동을 걸 때였으니까.



내가 게임을 처음 접했던 건, 여덟 살 먹었을 때 아버지가 사온 가정용 게임기로부터였다.


상표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고 사용설명서도 제대로 없었지만, 자체 내장된 팩 안에는


슈퍼마리오, 트윗비, 기구 라이트, 로드 건너 같은 빛나는 별 같은 옛 게임이 줄줄이 담겨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마치고 아들과의 대결을 원했던 아버지 덕택에, 나는 게임 속 온갖 비열한 버그와


꼼수를 이용해서 클리어라든지, 점수면에서 아버지를 이길 궁리만 하며 게임에 대해 점차 알아갔다.


그러나 내가 한창 게임에 몰두할 무렵, 우리 집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경제력이 파탄 난 집에는 온갖 압류딱지가 붙게 되었다. 한데 게임기를 그저 한낱 놀이기구로나 여긴


무시무시한 압류팀은 다행히도 게임기에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지만, TV에는 딱지를 붙여버렸기에


얼마 동안은 난 게임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국민학교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가 들고갔던


그 게임기 팩에 들어있는 게임만큼은 어느 정도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할만한 실력이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울적했다. 기울어진 가세로 인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게임팩을 사지 못했을뿐더러, 못해도 1가정 1 컴퓨터 시대에


이르러서도 언제나 나는 털털거리는 전자레인지만 한 TV 달린 게임기가 내 재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윈도 98 컴퓨터를 구하게 되었고, 



내 게임인생을 여는 제2번째 서막이 되어주었다.


물론 버려진 만큼 사양이 구렸던 윈도 98인 데다가,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았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살았던 탓에 나는 오로지 저 사양 시디 게임으로만 일관하는 


진성 고전게임 광적인 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2천 원씩 받는 용돈을 한 달간 모아서 사는, 


저렴한 만원짜리 가판대의 게임 CD들은 내 즐거운 추억이었다.


특히 팔콤, 손노리 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고전게임 인생의 은인이다 


어스토니, 브랜디쉬, 이스, 영웅전설 같은 저사양 게임들!


하기에, 농사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내 방구석에 들어와서 즐기는 게임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비록 고된 농사일로 인해 눈꺼풀이 꾸벅꾸벅 감기긴 했지만, 게임들은 너무나도 재미가 있었고 


시골에는 주얼 CD가 없었고, 패키지 3만 원짜리 창세기전은 내게 너무나도 비쌌다.데미안 개썎끼! 


늘 외치다가도 사랑합니다, 여왕님이 한마디에 어허허으허허끆 으흐흐 하고 훌쩍이곤 했었고, 


버몬트와 살라딘과의관계를 전혀 추리하지 못할 때(지금 보면 난 참 눈치가 없다.) 


버몬트가 셰라자드를 강간할 때 허허 제기랄 하다가도 버몬트 개썎끼! 늘 외치다가 살라딘이 부는 


오카리나와 버몬트의 눈물에 또 어허허으허허끆 으흐흐 하고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 에뮬 게임을 손대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광적인 팬의 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문방구마다 꽂혀있던 가판키 게임 CD는 접근성이 좋았지만, 


인터넷이 안되던 집안에 살던 나는 오히려 에뮬 게임의 접근성이 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푸키몬과 슈퍼패미컴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부터는 뻔질나게 읍내도서관 정보검색대 컴퓨터


실을 드나들며 USB도, CD도 사용할 줄 몰랐던 그때 디스켓을 십수장씩 들고다니며 뻔질나게 


게임을 받아가곤 했었다.


그때 했던 것들이 천지창조, 하베스트 문, 크로노 트리거, 파이널 판타지 같은 지금 와서 플레이해도 


텁텁함 없이 잘 넘어갈 명작 게임들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PC 엔진, 패미컴, 맘에, 네오지오는 덤이지만.


물론 지금 태어난 세대는 노잼 거릴 거 같다.


물론 내가 멍청이였던 탓에 매번 받아오는 에뮬 은 일판, 똑같았지만 내겐 근성과 끈기가 있었기에


뜻도 모를 대사를 십수 번씩 쏼라쏼라 뻔질나게 A 키를 눌러가며 NPC를 누비면서


클리어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린 날의 객기와 무모함이 없었으면 어떻게 플레이했을까 싶기도 하다.


이후에 내가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어느 정도 가세가 수복되어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떠나고,


XP를 거쳐 새로운 컴퓨터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는 친구들과의 교류나 부추김으로 인해 점차 


온라인 게임에 심취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싱글 플레이용 PC 타이틀 게임은


복돌의 문제나 그 인기성 때문에 점차 사양길을 걸어 


나중에는 그러한 게임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정말 찾아서 하고 싶은 게임과, 


끝없이 생각나는 게임이 많아 가끔 중고사이트나 뒤적거리다가


중고매물이나 재고를 찾게 되면 정말 뛸 듯이 기쁠 때가 많다.


학교 벼룩시장이나 중고장터에 나올 때마다 천원, 이천 원에 CD를 건졌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벼운 주머니를 쥐고 중고장터를 헤매고 있노라면 종종 게임을 하지 않아도, 


 게임을 떠올리는 것만 으로도 그땐 그랬었지, 하고 웃음 지어질 때가 많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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